이자도 안 주는 코인이 국채를 사들인다고?…스테이블코인이 만드는 조용한 돈의 경로

심층분석

일본 스테이블코인이 국채를 담기 시작했다, 화폐를 새로 찍지 않고도 국채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

스테이블코인이 국채를 사는 구조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코인에서 국채 더미로 이어지는 화살표

오늘(9월 9일) 일본에서 조용하지만 상징적인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준비하던 SBI와 스타테일의 합작사가, 자기네 코인의 준비자산 가운데 약 5%를 일본 단기국채로 채웠다고 밝힌 겁니다. 금액으로는 10억 엔, 우리 돈으로 94억 원 정도로 크지 않지만, 엔화 신탁형 스테이블코인이 준비자산에 국채를 편입한 건 2025년 일본 자금결제법 개정 이후 처음입니다. 왜 이게 그냥 지나칠 뉴스가 아닌지, 그리고 이게 결국 우리 자산시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래에서 하나씩 짚어드리겠습니다.
SIGNAL

일본에서 오늘 있었던 일

SBI홀딩스와 블록체인 기업 스타테일이 함께 만든 엔화 스테이블코인 JPYSC는, 일본 금융청 감독 아래 신탁 구조로 발행됩니다. 신탁형 스테이블코인은 발행량만큼의 현금성 자산을 신탁은행에 예치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이 준비자산이 전부 은행 예금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준비자산의 일부를 처음으로 일본 단기국채로 바꿔 담은 겁니다.

"엔화 기반 신탁형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준비자산에 일본 국채를 편입한 건 2025년 자금결제법 개정안 통과 이후 처음"이라는 설명이 업계 관계자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미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주별 규정에 따라 미국 단기국채를 준비자산으로 담을 수 있었고, 2025년 통과된 연방 스테이블코인법(GENIUS법)에 따라 조만간 연방 차원에서도 이 방식이 규율될 예정입니다.
출처: 디지털애셋

숫자만 보면 94억 원은 작습니다. 하지만 일본 3대 메가뱅크(미쓰비시UFJ·미쓰이스미토모·미즈호)도 올해 안에 자체 엔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 중이고, 국채를 아예 블록체인 위에 디지털증권으로 올려 24시간 즉시결제가 가능하게 만드는 프로젝트까지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작은 사례가 아니라, 일본 금융권 전체가 스테이블코인으로 국채를 사고파는 인프라를 함께 짜맞추고 있는 흐름 안에서 나온 첫 실물 사례라는 게 이 뉴스의 무게입니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건 이겁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국채를 산다는 게, 우리 같은 개인 투자자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답을 이해하려면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 구조부터 뜯어봐야 합니다.

STRUCTURE

스테이블코인이 국채를 사면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나

스테이블코인은 "1코인 = 1달러(또는 1엔)"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행량만큼의 안전자산을 항상 준비자산으로 들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발효된 GENIUS법이 이 준비자산의 범위를 명확히 정해놨습니다. 연준 계좌의 현금, 예금보험이 적용되는 은행 예금, 그리고 잔존만기 93일 이하의 단기국채나 이를 담보로 한 익일물 환매조건부채권(레포)만 인정됩니다. 발행사가 이자를 코인 보유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도 금지돼 있습니다.

왜 하필 '단기'국채일까요. 스테이블코인은 보유자가 언제든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년 만기 국채처럼 만기가 긴 채권은 가격이 출렁여서 급하게 팔면 손실을 볼 위험이 있는 반면, 만기 93일 이하 단기국채는 가격 변동이 거의 없고 언제든 현금화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규제가 유독 이 짧고 안전한 자산만 허용하는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달러를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꿔서 들고 있으면, 그 달러는 발행사 손을 거쳐 결국 미국 단기국채나 초단기 대출(레포) 시장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그만큼 단기국채를 사려는 새로운 손이 하나씩 늘어나는 셈입니다. 실제로 지금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3천억 달러에 육박하고, 이 중 99%가 달러 연동입니다. 이 돈이 전부 어딘가의 단기국채나 레포 시장에 앉아 있다는 뜻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왜 이렇게 빠르게 제도권으로 들어오고 있는지는 미국의 코인 규제 법안(클래리티 액트)을 다룬 이전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누군가 그걸 사는 건 원래 항상 있던 일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산다고 해서 뭐가 특별할까요? 다음 섹션에서 이 부분을 짚어보겠습니다.

STRATEGY

새 돈을 찍지 않아도 국채 수요가 늘어나는 경로

여기서 핵심은 돈의 출처입니다.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로 국채를 사는 경우, 그 돈은 시중에 없던 돈을 새로 만들어서 사는 겁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이 국채를 사는 돈은, 이미 시중에 있던 현금(달러·엔화)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형태로 옷만 갈아입은 뒤 국채로 흘러간 것입니다. 총량이 늘어난 게 아니라, 원래 은행 예금이나 지갑 속에 잠들어 있던 돈이 국채 시장으로 이동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이게 왜 숨은 유동성 공급처럼 작동하냐면, 이동하는 규모 자체가 계속 불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2018년 이후 연평균 750%씩 성장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커지는 속도가 빠릅니다. 국채를 발행하는 정부 입장에서 보면, 자기 채권을 사줄 새로운 매수 주체가 계속 늘어나는 셈이니 국채 금리를 크게 올리지 않고도 발행 물량을 소화할 여지가 커집니다. 화폐 총량을 늘리지 않고도, 국채 수요만 계속 새로 만들어내는 구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일본이 지금 이 구조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일본은행(BOJ)이 그동안 정부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며 시장에 돈을 풀어왔는데, 이 방식은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만약 BOJ 대신 민간(은행이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이 이미 시중에 있는 돈으로 국채를 사준다면, 화폐를 새로 찍지 않고도 국채 매입 주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일본 메가뱅크 세 곳이 나란히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는 것도, 국채를 24시간 블록체인 위에서 즉시 결제되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는 것도 같은 방향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구조를 처음 접했을 때는 "결국 이자도 안 주는 코인으로 사람들이 왜 바꾸겠어"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실제로 지금처럼 금리가 높은 국면에서는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달러 예금을 놔두고 무이자인 스테이블코인으로 갈아탈 유인이 크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같은 방식으로 국채를 사들일 수 있을까요? 다음 섹션에서 확인해보겠습니다.

RISK

한국은 왜 같은 길을 못 가나, 그리고 지금 같은 금리 인상기의 변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국은 지금 구조 그대로는 이 방식을 쓰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국내 한 연구기관(KDI)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일본과 달리 만기가 짧은 단기 국고채가 사실상 발행되지 않습니다. 국가재정법상 국채 총발행액은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구조 때문에 단기물만 별도로 유연하게 찍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려는 곳이 있어도, 미국·일본처럼 안전하고 짧은 국채에 준비자산을 담을 마땅한 선택지 자체가 부족한 셈입니다.

그래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나온다면, 준비자산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미국·일본 사례보다 훨씬 까다로운 숙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지점은 앞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진행될 때 계속 지켜봐야 할 변수라고 딥노믹은 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변수는 지금이 금리 인상기라는 사실입니다. 미국 연준은 현재 기준금리를 3.50~3.75%로 유지 중인데, 9월 15~16일(현지시간) 예정된 FOMC 회의에서 25bp 추가 인상 가능성이 시장에서 절반을 훌쩍 넘는 수준(약 55~60%)으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지난달 잭슨홀 연설에서 물가 위험을 강조한 이후 인상 쪽 무게가 실린 상황입니다.

왜 금리 인상기엔 스테이블코인이 힘을 못 쓸까요. 스테이블코인은 보유자에게 이자를 주지 않습니다. 반면 지금처럼 금리가 높을 때는 그냥 달러 예금만 들고 있어도 연 3%대 후반 이자가 붙습니다. 이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스테이블코인으로 갈아탈 이유가 약한 구간인 셈입니다. 반대로 향후 금리 인하 국면에 들어서면 예금 이자 매력이 줄어들면서 스테이블코인 전환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미국이 금리를 쉽게 못 내리는 진짜 이유와 스테이블코인의 관계는 이전 글에서 더 깊이 다뤘습니다.

즉 지금 일본에서 나온 이 작은 국채 편입 사례는, 당장 오늘내일 시장을 흔드는 재료는 아닙니다. 다만 국채를 사들이는 새로운 손이 화폐를 새로 찍지 않고도 계속 늘어나는 구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신호이고, 이 구조가 본격적으로 힘을 받는 시점은 지금 같은 인상기가 아니라 다음 금리 인하 국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딥노믹의 판단입니다.

종합의견

스테이블코인이 국채를 사는 돈은 새로 찍은 돈이 아니라 이미 시중에 있던 돈이 옷을 갈아입고 이동한 것이지만, 그 이동 규모 자체가 빠르게 불어나면서 국채를 사줄 매수 주체가 계속 늘어나는 효과를 낸다고 봅니다. 한국은 단기 국고채가 사실상 발행되지 않는 구조라 미국·일본과 같은 방식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 구성이 쉽지 않고, 이 부분은 앞으로 관련 제도 논의가 어떻게 풀리는지 계속 지켜볼 변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금리가 높은 인상기엔 무이자 스테이블코인의 매력이 약하기 때문에, 이 구조가 본격적으로 자산시장에 힘을 보태는 시점은 금리 인하 국면으로 넘어갈 때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딥노믹의 개인적 견해이며, 실제 전개는 다르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 본 콘텐츠는 학습·정보 공유 목적의 개인 의견이며, 투자 자문이 아닙니다. 특정 종목·자산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국채·환율·금리 관련 수치는 작성 시점 기준이며, 이후 변동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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